최근 실제로 발견되어버린 역사 속 한반도 거인의 증거

“옥저의 한 노인에게 듣기로, 베옷을 얻었는데 바다에서 떠내려온 시체의 것이었다. 그 소매의 길이가 세 길이나 되었다.” -장화의 『박물지(博物志)』, “옥저 해안에서 소매 길이가 석 장이나 되는 베옷을 건진 적이 있다.” – 『동이전(東夷傳)』

한 길과 한 장(丈)은 모두 열 척(尺) 정도를 뜻하는 단위입니다. 한 척의 길이는 현재로 따지면 약 30cm, 소매의 길이만 무려 3m인 셈입니다.

옥저 해안을 가리키는 똑같은 두 개의 목격담은 단순한 우연일까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삼국사기』, 조선 시대 『동사강목』에도 이렇게 ‘거대한 사람’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물론 단순히 오래된 설화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올해, 경주에서 한 유골이 발견되며 고고학계에서는 한바탕 논란이 일어났는데요.

당시 신라 남성의 평균 키는 161cm인데 발견된 유골의 키는 약 180cm였기 때문입니다.

정사로 유명한 『삼국사기』에서는 ‘동해 건너 외딴섬에 커다란 사람이 산다’고 하기도 했죠.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거인이 사는 집에 대해 전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외딴섬’에 갔는데요. 그곳엔 굉장히 크고 좋은 집이 있었습니다.

조금 뒤, 집을 들여다본 남자는 겁을 먹고 도망쳤는데요. 집 앞에 사람이 신을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신발이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수광은 『어우야담』에서도 강원도 사람에게 거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남자는 동료들과 바다에서 며칠째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존재를 목격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수십 배는 될 것 같은 거인이었습니다. 상반신만 물 위로 드러낸 거인은 거대한 손으로 배를 공격했고, 도끼로 싸우던 남자는 결국 거인의 팔을 잘라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18세기 유만주의 『통원고』에는 전남 흑산도에서 표류한 사람의 목겸담이 나옵니다.

그는 바다 건너에 있는 곳에 도착해 거인을 관찰했는데, 눈이 하나밖에 없고 굉장히 흉포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곳을 ‘대인국(大人國)’이라고 칭하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대인국의 거인들은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굴에 가두고 살을 찌웁니다. 그리고 화로에 살이 찐 사람부터 넣고 쇠꼬챙이로 뒤적이며 요리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인에게는 조선인 아내가 있었는데, 우연히 대인국에 왔다가 거인에게 잡혀 자식을 12명이나 낳는 비극적인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조선 인조 때 『용주유고』의 ‘통천해척표풍설’이나 19세기 『청구야담』 등은 모두 같은 내용을 서술하는데요.

이 기록들은 한결같이 바다 너머 ‘식인 거인이 사는 외딴섬’을 가리키고 있는데요. 놀라운 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서에서도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으로 이 ‘거인섬’ 장인국(長人國)이라고 한 기록은 송나라 설화집 『태평광기』입니다. “신라국은 동남으로 일본과 이웃하고, 동쪽으로 장인국과 인접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장인들은 사람보다 다섯 배 이상 크고, 이빨은 톱과 같으며 손톱은 갈고리 같다고 하는데요. 동물을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으며 ‘사람도 잡아먹기 때문에’ 신라인들이 병사를 배치해 막았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당나라 역사책 『신당서』 역시 똑같은 내용을 다루는데요. 동쪽으로 있는 장인, 키는 석 장(약 3m), 톱날 이빨과 갈고리 손톱,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사실과 신라의 군사들이 이를 막았다는 내용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문』의 위요는 당나라의 사신으로 신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풍랑을 만나 ‘장인국’으로 보이는 섬에 도착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데요.

그는 키가 2장이나 되고 옷을 입은 장인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고, 100여 명이 되는 사신 일행을 모두 잡아 가뒀죠.

무리를 지어 돌아와 살이 많은 이들을 골라 50여 명을 데려갔습니다. 충격적인 광경은 그 사람들을 모두 삶아서 잡아먹는 것이었습니다.

9세기 『옥당한화』의 왕인유는 육군사 서문사공이 신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표류한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몇 달이나 표류한 끝에 도착한 곳에는 신장이 5-6장이나 되는 거인이 있었습니다. 옷차림은 특이하고, 목소리는 천둥 같았다고 하는데요.

서문사공을 잡아 바위 동굴에 가두고 다른 거인들을 불러와 구경하는 등의 행동을 하더니 서문사공을 구덩이 속에 가둡니다. 빠져나온 서문사공은 배에 타 거인과 싸우다가 손가락 3개를 자르게 되는데요. 이때 가져온 거인의 손가락을 조정에 바쳐 이것을 궁중 창고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시대에 전하는 일관된 ‘장인국’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끝은 모두 신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라와 관련된 역사 중 눈여겨 볼만한 다른 기록들은 바로 역대 신라 왕들의 유독 큰 키인데요.

『삼국사기』에서는 신라의 4대 왕 탈해 이사금에 대해 “장성하니 신장이 9척이나 되었고, 풍채가 빼어나며 지식이 남달랐다”고 묘사합니다. 9척이라면 키가 약 2m 70cm는 되었다는 셈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26대 왕 진평왕의 키가 11자나 되며, 그 무게 때문에 천주사를 방문했을 때 밟은 돌계단 3개가 전부 부러졌다고 하는데요.

신라 8대 왕인 아달라이사금 7척, 18대 왕인 실성마립간 7척 5촌, 23대 왕 법흥왕 7척, 28대 왕 진덕여왕 7척 등 신라의 왕족들 사이에서 7척이나 되는 키는 자주 등장합니다.

게다가 2021년 7월, 약 180cm의 최장신 유골이 경주에서 발견됩니다. 5-6세기 신라의 고분, 24기. 유골이 발굴되자마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유골들에 비해 20-30cm는 더 큰 유골이 관에 맞춰 기이하게 꺾인 채로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덤 안에 금세공품이나 무기 등이 없어 지배계급도 아니었고, 다른 160cm대의 유골들과 함께 전형적인 신라의 고분에서 나왔기 때문에 외국인도 아니었는데요.

시대별로 몇 cm가 차이나더라도 최장신 유골은 우리가 알던 신라인의 키를 훌쩍 넘는 상식 밖의 신장이었습니다. 우리의 상식 밖 이야기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나타났던 식인 거인과 그들이 사는 ‘장인국’ 역시 단순히 설화 속 존재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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