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P3 전도연 >

1990년 화려하게 데뷔하며 이후 온갖 여우주연상을 휩쓰는 등 아주 큰 인기를 끌었던 전도연씨. 그러다 2007년, 영화 ‘밀양’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최초이자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는데요.

동양인이라면 상 받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말 큰 영화제였기에 전도연씨의 수상은 큰 벅참을 안겨줬죠. 칸의 여왕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대단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전도연씨는 의외의 심경을 밝혔는데요. 상 받은 것은 정말 행복하고 영광스러웠지만 그날 이후 왕관의 무게로 삶이 바뀌었다고 털어놓은 그녀.

“칸 영화제로 인해 얻은 영광도 크지만 좀 더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들을 하고 싶은데, 점점 작품 수가 줄어들고 영화제 출품용 영화만 출연할 것 같다는 인식이 생겼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해야 할 배우로서 그 무게감을 지금까지도 견디고 있다”라고 밝히며, 수상 이후 따르게 된 이미지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 했는데요.

상을 받은 후, 오히려 어려운 존재의 배우가 되며, ‘에이 전도연이 이런 영화 하겠냐’라는 인식이 생겨 한편으로는 답답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죠.

< TOP2 안정환 >

한국 축구계 역사에서 아주 뜨거운 불을 지폈던 2002 월드컵. 여기서 큰 활약을 보인 안정환씨는 대한민국 축구계의 레전드로 불렸죠. 하지만 그만큼 안정환씨는 다사다난한 삶을 살기도 했는데요.

월드컵에서 팀을 하드캐리하며 4강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월드컵 경기장의 불이 꺼지자 안정환씨에게 다가왔던건 바로 다름 아닌 현실의 벽이었습니다.

안정환씨의 골로 탈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탈리아.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안정환씨가 임대로 속해있던 이탈리아 구단 AC페루자의 구단주는 공식석상에서 안정환씨에 대한 험담을 이어나갔는데요.

‘이탈리아에서 배워 이용해 먹었다’ ‘기분 나쁜 놈’ ‘거지였다’라고 안정환씨를 깎아내리는 등 월드컵이 끝난 후 안정환씨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 경기를 뛰려고 했지만, 집 앞에 스포츠카가 다 박살나 있거나, 이탈리아에서 인종차별은 물론 살해 위협도 받으며 생활해야할 정도로 안정환씨는 큰 타격을 맞이하게 됩니다.

또 에이전트 안종복씨는 돈 욕심 때문에 일을 옳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못했고, 결국 안정환씨는 원래 소속이었던 부산팀에서 EPL팀 계약뉴스, 그리고 임대간 상황이었던 페루자에서 안정환씨를 타 팀에 이적시킨 뉴스가 같은 날 나와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후, 부산 측에서 안정환씨를 넘긴 일본 스포츠 매니지먼트 업체 PM에서 어쩔 수 없이 빚을 청산하는 조건으로 안정환씨의 소유권을 완전히 사는 등 3년동안 J리그로 임대를 보내며 안정환씨의 모든 수익은 거의 PM측에서 다 갖게 됩니다.

< TOP1 야기라 유야 >

영화 <아무도 모른다>로 전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칸 영화제 최연소 남자주연상을 받은 일본의 야기라 유야. 데뷔작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달리, 다양한 캐릭터들까지 찰떡같이 소화해내며 스토커나 오버캐릭터, 폐인 캐릭터 등등 다양한 역할을 훌륭한 연기로 표현해왔죠.

타임지에서 아시아의 영웅들을 뽑을 때 일본 대표로 뽑히는 등 어린 나이와 경력에 비해 엄청난 부담을 안고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다, 2008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죠.

그러던 그에게도 한 줄기 빛이 내려왔는데요. 바로 고등학교에서 첫눈에 반한 여자친구, 같은 소속사 출신 배우인 ‘토요타 에리’였죠.

엄청나게 사랑했던 탓에, 그는 4년 연애 끝에 거의 법적으로 결혼할 나이가 되자마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덕분에 마음고생을 극복하여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힘든 시기를 잘 극복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꾸준한 연기 활동을 보여주는 등 줄곧 아역시절이 즐겁지 않았다고 인터뷰하고 다음 생에도 배우가 된다며 어른이 되어서 데뷔하겠다고 밝히며 과거의 힘들었던 일에 대해서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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