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다가 팀의 몰락을 보고 복귀한 레전드 선수들 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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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선수들의 마지막으로 가장 빛나는 순간, 
바로 은퇴하는 순간인데요.

팬들의 성원을 뒤로한 채 떠나갔던 선수들은 
이후 또다른 제 2의 인생을 코치나 감독 심지어 구단주로 활동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중에는 자신이 소속된 팀이 
너무 엉망으로 플레이를 하자 답답해서 참지 못하고 
복귀 선언을 해버린 선수가 있는데요.

오늘은 <은퇴했다가 팀의 몰락을 보고 복귀한 레전드 선수 TOP3>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위 히바우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FC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선수이기도 했던 히바우두!

스트라이커부터 미드필더까지 유연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던 그는 
슛이면 슛, 패스면 패스, 몸싸움부터 현란한 드리블 기술까지 
말그대로 만능형 선수로 유명했는데요.

특히 2002한일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국내에도 이름을 널리 알린 바 있죠.



그런 그는 2011년, 영혼의 파트너라 불렸던 호나우두가 은퇴함에 따라 
그 역시 은퇴하는 줄 알았는데요.

이미 발롱도르, 챔피언스리그 우승, 월드컵 우승 등 이룰건 다 이룬 상태에 
3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었음에도 불구, 이후 4년이나 커리어를 더 이어가며, 
말년엔 고향인 브라질 리그의 모지미링 EC팀에서 
화려하게 은퇴를 하게 됩니다.



은퇴 이후엔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모지미링 EC의 구단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히바우두!

그런데 히바우두의 경영 능력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컸던 것일까요.

줄곧 상위권을 기록했던 모지미링팀은 
히바우두 은퇴 이후 하위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강등 위기에 몰리게  되는데요.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히바우두는 
“우리 팀에 현재 순위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은퇴 15개월 만에 전격 복귀를 선언!
이후 팀 훈련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는데요. 

정말 클라스는 영원한걸까요.

복귀 후 첫 출전부터 승리로 이끌며, 
팀에 시즌 첫 승을 안긴 것도 모자라, 이후에도 연전연승! 
결국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고 마는데요.



특히 복귀에 환호하는 팬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는 듯한 
환상적인 프리킥은 현역시절의 그것과 큰차이가 없어보였습니다.

하지만 팀을 구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히바우두는 현역시절부터 앓아왔던 왼쪽 무릎 통증이 재발하며 
또다시 은퇴의 기로에 섰는데요.



결국 세월은 이기지 못하고 얼마안가 
2번째 은퇴를 한 히바우두!

그래도 41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프로 경기를 뛰는 것도 대단한데 
추락하는 팀을 살리기까지 하다니 
정말 팀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것 같네요.

2위 헨리크 라르손

UEFA컵 역대 최다 득점자 이자 스웨덴의 축구 영웅인 헨리크 라르손은 
볼 컨트롤, 밸런스, 브레인 3가지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교과서적인 선수로 유명했죠.

특히 챔스리그 경기 도중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입고도 
이를 7개월 만에 극복해 내고 더 완벽해진 모습을 선보인 그는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선수였는데요.



이후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스페인의 명문 구단 FC 바르셀로나와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활약은 
그를 전설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명문팀에서의 활약 이후 은퇴 시점이 다가오자 그는 
고향팀인 스웨인리그의 회가보리팀으로 이적하며 은퇴를 준비했는데요.



고향팀으로 돌아가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다가 
2009년 10월 28일 유르고덴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완전히 은퇴를 한 라르손!

은퇴 후 지도자 과정을 밝기 시작한 그는 
2013년 수석코치로서 고향팀인 회가보리로 다시한번 돌아오게 되는데요.



그런데 팀의 상태는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팀성적은 말그대로 처참했고 
선수층은 연이은 부상으로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던 것인데요.

결국 팀이 강등 위기에 빠지자 
라르손은 본인이 직접 선수로 복귀하여 강등을 막겠다고 나섰습니다.



은퇴 이후 공백 기간이 4년이나 됐지만 
급박한 상황에 그는 제대로 몸상태를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출전을 감행했는데요.

그러나 그는 은퇴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의 몸상태를 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끝내 팀을 강등 위기에 벗어나게 합니다.



이후 시즌이 끝나자 라르손은 다른팀의 감독직 제의를 받아들여 
회가보리를 떠나게 되는데요.

라르손의 고생이 허무하게도 다음시즌, 
회가보리는 결국 강등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한편 라르손이 복귀할 당시 회가보리 팀에는 
라르손의 아들인 조던 라르손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었는데요.

그때문에 프로 경기에선 정말 보기 힘든, 
부자가 같이 경기를 뛰는 진기한 관경이 펼쳐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1위 마이클 조던

그 누구도 이견이 없는 독보적인 최고의 농구 선수이자, 
미국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스타 1위에 항상 거론되는 선수 마이클 조던!

1984년 시카고 불스에서 신인왕으로 시작한 그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 연속 우승 후 
아버지 피살이라는 비극이 덮치며 갑작스럽게 은퇴를 했는데요. 

이후 1995년 복귀해 또다시 3년 연속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후 더이상 증명할 것이 없다는 듯 
최고의 자리에서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하며 코트를 떠났죠.



은퇴 후 그의 첫 행선지는 ‘워싱턴 위저즈’로, 
당시 뜻이 맞아 팀의 지분을 매입해 주주이자 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장직에 오르게 됐는데요.

문제는 당시 워싱턴 위저즈의 성적이 
말그대로 최악이었던 것입니다.



팀이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자 조던은 팀 구성원을 대대적으로 교체하고 
훈련에 직접 참여하여 사기를 돋우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워싱턴 팀은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더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들여야 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 팬들은 
차라리 조던이 직접 뛰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애원하기에 이르렀고 
워싱턴 구단까지 나서 조던을 설득하기 시작했죠.



결국 돌아올 일이 없을 것이라던 조던은
40세라는 불혹의 벽과 3년이라는 긴 공백기간을 깨고 
동부 최하위권 팀인 워싱턴 위저즈로 입단하게 됩니다.

사실 당시 조던은 나이와 상황 때문에 
‘한물갔을 것이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는데요.

복귀 후 정규 시즌 첫 경기는 아쉽게 2점차 패배를 했지만 
이후 연전연승을 거두며 다시 전설을 써내려가기 시작,
바로 전 시즌 19승에 그쳤던 워싱턴팀은 
조던이 들어온 후 37승을 거두면서 성적이 두배로 뛰게 됩니다.



당시 경기 내용을 보면 
말그대로 조던 원맨팀이라고 불려도 무색할 정도의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는데요.

40세의 성적이라곤 믿기지 않는 
한경기 40득점, 50득점을 마구 선보인 조던은 
다른 전성기 현역 선수들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복귀 당시만 해도 주요 후보 선수로 만족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으나 
3년 공백기와 40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해질 정도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고 그걸 성적으로 나타낸 조던은 
정말 마지막까지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을 주며, 
선수로서 가장 완벽한 마무리를 지은 것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흔히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선수라도 세월을 이겨내긴 힘든 법인데요.

그것을 직접 보여준 선수들도 정말 대단하지만, 
설령 재도전 후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은 도전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네요.